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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연합과 일치를 위한 주일 <공동설교문>
admin 2004-10-26 10:15:00 6505
연합예배 공동설교문.hwp (16K)

한기총과 KNCC는 한국교회의 연합을 위하여 대화를 계속하는 가운데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이해와협력위원회’를 구성하여 3.1절 기념예배와 8.15 기념예배를 공동개최 했으며 10월 31일(주일)을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를 위한 주일’로 전국교회와 함께 지키기로 했습니다. 이에 오는 10월 31일을 귀 교단 소속 교회가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해 기도하는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를 위한 주일’ 로 지킬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요청합니다. 

가. 산하 교회에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를 위한 주일’ 참여 요청공문 발송
나. 산하 교회에 한기총과 KNCC가 합의한 ‘공동설교문’ 발송 및 주일설교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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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연합과 일치를 위한 주일 공동설교문>

 교회 일치의 근거와 목적 
(요한복음 17장 11~21절)

1. 교회의 일치를 지향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배후에는 교회 분열의 역사와 상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분열은 스캔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역사는 그 자체가 분열의 역사였습니다. 교리논쟁(성서 기록의 권위문제 등), 신앙고백의 구속력 문제(16, 17세기의 유럽 교회의 신앙고백이 어느 정도 구속력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성령운동과 경건파에 의한 부흥운동의 도전, 정치 사회적 문제에 대한 대처방법에 따른 이견(국가와 교회의 관계문제, 노예제도를 둘러싼 미국 장로교회의 분열, 인종분리정책과 남아프리카 공화국 교회의 분열, 반공주의 등), 사회문화적 원인(이민, 지역주의, 언어적 갈등 등) 등에서 우리는 분열의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열이 있기에 우리는 온전한 일치를 추구합니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과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은총을 입어 하나님과 일치되었습니다. 인간과 하나님의 일치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지불하신 대가는 어떠한 것으로도 비교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교파교회 선교에서 시작되어 처음부터 교파적으로 분열되어 있었지만 훌륭한 일치의 전통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해방 후, 신사참배문제, 신학적인 문제, 세계교회협의회 회원권 문제, 반공주의, 독재정권과의 관계 문제 등을 두고 크게 양분되었고, 지역주의와 교권에 대한 다양한 이해관계로 인해 또 다시 많은 수의 교단들로 분열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한국교회를 분열시킨 외적인 요인들이 많이 해소되고 민주화도 성취된 상황에서 한국교회의 일치에 대한 여망이 다시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일치주간을 맞아 성서가 의미하는 교회의 일치가 무엇인지, 그 근거는 무엇이며 목적은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2.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시고, 또 스스로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7장의 기도는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 직전에 하신 것이라는 점에서 그 절실성이 더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는 무엇을 위한 기도였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인 것처럼 그리스도인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일치의 근거는 무엇이며, 그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요?

예수께서 기도하신 일치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있습니다. 세상의 다양한 조직체들의 일치 근거와는 다릅니다. 권력집단은 그 권력에의 의지에 의해, 경제 집단은 그 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 가족은 그 혈연관계에 의해 혹은 지연, 학연 등 인간적 동기에 의해 일치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 서 있는 교회가 뿌리 내리고 있는 일치는 다릅니다. 교회는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말씀에 존재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교회 안에서는 교인들의 계급, 남녀노소, 건강한 사람과 병든 사람, 사회적 신분과 자연적 조건이 문제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형제 자매인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그와 같은 인간적인 이유로 인한 분쟁과 분열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혹은 교파 신학적 입장의 차이, 인간적 연민과 동정 등도 궁극적인 교회의 일치를 방해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의 교회는 여전히 분열되어 있고, 세상은 교회를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전해 주었는데 세상은 이 사람들을 미워했습니다.’(요 17:14). 
교회가 세상의 미움을 받는다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교회의 역사 처음부터 우리는 세상의 미움에서 비롯된 교회의 고난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왜 교회를 미워할까요? 그것은 교회가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요 17:14).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교회가 세상의 질서와는 다른 질서 속에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이 사람을 소유에 의해 판단한다면, 교회는 존재의 가능성에서 판단합니다. 세상이 자아실현, 자기성취를 통해 삶의 가치를 확인한다면, 교회는 자기를 버림으로써 확인합니다. 

세상의 미움은 교회가 진정한 교회인지, 거짓 교회인지를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입니다. 어느 교회가 세상의 미움을 받습니까? 세상의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정의를 사랑하는 교회는 세상의 미움을 받습니다.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 편에서 그들의 입과 눈과 귀가 되는 교회는 세상의 미움을 받습니다. 


3. 그런데 세상의 미움을 받는 교회를 위해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기도 합니다: ‘내가 아버지께 원하는 것은 그들을 이 세상에서 데려가시는 것이 아니라, 악마에게서 지켜주시는 것입니다’(요 17:15). 
세상의 미움, 박해와 시련이 닥쳐오면 교회는 자칫 현실을 도피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교회가 악의 세력을 회피하거나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악의 세력과의 적극적인 대결과 그에 필요한 하나님으로부터의 능력을 요청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가 ‘진리로 거룩해져야 합니다.’(요 17:17). 교회의 성화는 교회 자체의 속성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닙니다. 진리가 교회를 성화시킵니다. 교회의 성화는 세상 안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는 실천적 행동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공동번역은 이 말씀을 ‘이들이 진리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번역합니다. 진리를 위해 몸을 바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거짓과 폭력에 대항하는 것입니다.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고난 받는 사람들을 위해 함께 투쟁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그 진리를 확신하는 사람들이 진리를 위해 몸을 바칠 때 그 진실성을 획득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에 진리는 힘을 얻어 불의와 어둠의 세력을 이기는 것입니다. 교회는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곧 진리를 위해 몸을 바치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진리를 증언하는 길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길은 진리를 삶으로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이 교회를,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될 것입니다. 


4. 교회는 왜 하나가 되어야 할까요? 보다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서 그럴까요? 다양한 교파분열 때문에 받는 세상의 비방을 벗어나기 위해서일까요? 아니면 조직적인 세력을 과시하고, 사회에서 발언권을 얻기 위해서일까요? 

성서가 증거 하는 교회의 일치는 실용적 목적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17장 21절의 말씀에 의하면 ‘세상으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을 믿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한 것처럼 교회도 사랑했다는 것을 세상으로 하여금 알게 하는데(요 17:23) 그 목적이 있습니다. 교회의 일치는 그 자체 안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교회의 일치를 위해 그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을 교회에게도 주십니다(요 17:22). 그 영광은 십자가 사건에서 가장 완벽하게 표현됩니다. 일치에서 중요한 것은 획일화가 아니라 정체성입니다. 교회의 일치는 조직의 통합이나, 신학의 통일을 통해서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치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 참여하는데서 성취됩니다. 즉 믿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함으로써 교회는 영광을 받으며, 복종과 겸손을 통하여 그 영광을 표현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교 일치의 궁극적 목적을 분명히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교 일치는 분열된 교회를 하나로 만드는 것 이상의 목적이 있습니다. 교회의 일치는 하나님과 분열되어 있는 세상을 하나님과 일치되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선 땅 위의 교회가 연합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일치를 예시할 것입니다. 


5. 그리스도교 일치는 교회와 교회, 신자와 하나님의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완전한 일치의 영역은 우주적 일치를 의미합니다. 아파하는 세상, 그것이 성서가 말하는 세상입니다. 그 세상 안에서 인간도 아파하고, 심지어 교회도 아파하고 있습니다. 다만 교회는 그 아픔 속에서도 궁극적 희망을 안고 살아가며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서 노력함으로 아픔과 죽음에 매몰되지 않을 뿐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자신, 하나님과 세계, 온 우주적 일치를 위한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노력하는 것은 이러한 우주적 일치를 꿈꾸기 때문입니다. 


         
2006년 환경주일 설교자료 1 관리자 2006.06.01
국가인권위와 청소년보호위의 동성애문제에 대한 기독교적 입장 cckpr 2003.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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